2016/05/09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

김창해(요한세례자) 신부 | 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소와 사자가 서로 사랑을 했더란다. 둘은 너무도 사랑해서 서로에게 제일 좋은 것들을 주고 싶었더란다.
그래서 소는 제일 싱싱한 풀을 뜯어다 매일 사자에게 주었고 사자는 정글을 다니며 매일 맛 좋고 싱싱한 고기를 잡아 소에게 바쳤더란다. 소와 사자와의 그 뜨거운 사랑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책에서 보기도 했고 또 누군가에게 듣기도 했던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우선 자기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봐주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방식을 통해서 생겨나고 깊어지며 지속된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그것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림의 떡은 우리를 배부르게도 행복하게도 감동도 주지 못한다.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2년 전 나는 이천의 한 비닐하우스 농장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 농장주는 점심시간의 막간을 이용해서 외국인 근로자 친구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 농장주는 나에게, 그것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만큼 생각해주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자가 소에게 맛좋고 품질도 좋은 고기를 선물하면서 그처럼 말했을 것이다. 소 역시도 신선한 풀을 뜯어다 주면서 사자에게 그랬을 것이다.
  점심시간은 고작 1시간, 식사를 하고 나면 설거지 할 시간조차도 없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친구들이 머물고 있는 컨테이너 쪽방엔 숨을 아끼고 싶을 정도로 악취가 가득했다. 하기야 비닐하우스 옆에 덩그마니 차려진 숙소이니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눈과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숙소가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할 판국에 더 무언가를 바라다니, 그것은 분명 욕심일 게다. 그러니 그저 숨죽여 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어떤 친구는 오렌지 주스 플라스틱 병 하나를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고 들어간다. 농수를 받아다 먹고 있었다. 하기야 농수도 지하수이니 당장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또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계신다. 가끔씩 휴가를 내서 도와드리러 내려가곤 하는데, 농사일이라는 것이 참 힘든 일이라는 것을 갈 때마다 느끼곤 한다. 어깨, 허리, 무릎 할 것 없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동반하신 수녀님에게 여기 근로자 친구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여쭤 보았더니, 파스라고 했다.
스무 살 초반의 친구들에게는 더 없이 기다려질만도 한 점심시간, 그런데 이 친구가 먹는 점심식사는 식어버린 쌀밥에, 재탕 삼탕의 닭우린 물이 고작이었다.
  멀리 동네를 바라다본다. 외국인 친구들이 머무는 곳은 논바닥 한가운데, 사람이 사는 동네와는 참 멀리도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외국인 근로자 친구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그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의 거리만큼 그들은 사람 사는 동네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 받을 때가 있습니다.’(「자비의 얼굴」 3항)라고 하시며, 우리 스스로가 자비의 증거자가 되기를 촉구하신다.”

  자비의 특별 희년, 102차 이민의 날을 맞으며 나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해 부름을 받았으며, 누구에게 자비의 증거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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